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 대통령/명단 (문단 편집) ==== 취임일 논란 ==== 이승만의 취임일이 정확히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7월 24일]]''', [[8월 15일]]의 두 가지 의견이 대립하는데, 이는 대통령 임기 관련 사항을 요즘 수준으로 명확하게 규율해 놓지 않았던 탓이다. 일단 7월 24일은 초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날이고(취임설), 8월 15일은 정부수립 국민축하식을 거행하여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한 날이다(정권이양설). [[1948년]]의 상황만 보자면, 당시 관보에는 취임식이 있었던 7월 24일이 취임일로 공고되었으며, 실제로 이승만은 7월 24일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여 수일 사이에 국무위원들을 모두 임명, 행정각부를 구성한 뒤 8월 15일 이전부터 대한민국 정부를 실질적으로 가동시키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초대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에도 '4281.7.24'라고 적혀 있다.[[http://theme.archives.go.kr/next/vote/gallery/stampPublicPopup.do?no=1|#]] 이승만의 취임일 논란이 불거진 계기는 [[1952년]]의 [[제2대 대선]]과 [[발췌 개헌|직선제 개헌]] 문제였다. [[연임|4년 연임제]]였던 [[제헌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임기 만료 30일 전까지는 후임자를 선출해야 하므로, 1948년 7월 24일에서 1952년 7월 23일까지의 4년간을 임기로 봤을 때 적어도 1952년 6월 23일까지는 대선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의 임기 만료가 코앞으로 다가온 1952년 6월에 들어서도 개헌 논의는 결판이 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다급해진 직선제 지지측 국회의원들은 시간을 벌고자 이승만의 임기 시작일을 1948년 8월 15일로 취급함으로써 실제 임기 만료 시점을 며칠 뒤로 미루려고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의원들 다수가 이 주장에 반대했으나, 이후 [[민주국민당]]을 비롯해 발췌 개헌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6월 21일부터 국회를 불참함으로써 6월 23일 당일까지도 개헌 또는 대선에 필요한 정족수는 미달되었고, 결국 직선제 개헌파들의 주도 아래 남은 의원들끼리 1대 대통령의 임기를 8월 14일까지로 볼 것을 의결했다.[* 제2대 국회 제12회 제84차 국회 본회의 (1952년 6월 23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은 8월 5일에야 치러졌기 때문에, 대선 날짜는 임기 내가 되도록 어떻게든 끼워맞췄지만 임기 만료 30일 전에 선거한다는 헌법 조항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이로써 당시의 논란은 일단락되었으나, 이 영향으로 지금까지도 이승만의 임기는 여기저기서 다르게 표기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